변화의 물결 거셌던 2015년…양성평등 위한 힘겨운 발걸음
2015년은 19년 만에 ‘여성발전기본법’이 개정돼 본격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양성평등기본법’이 시행되는 등 여성 관련 법적 변화가 특히 눈에 띄었다.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된 것도 큰 이슈였다. 여성계는 이번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여성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는 여전하고, 임신한 뒤 육아와 직장생활의 양립이 힘든 워킹맘의 비애도 이어졌지만, 남성의 육아 참여가 크게 증가한 해이기도 하다.
▲ 2014년 5월 28일 개정된 ‘양성평등기본법’이 2015년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 여성과 남성의 동반 성장 ‘양성평등기본법’ 시행
1995년에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이 올해 7월 1일 ‘양성평등기본법’으로 19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기존의 여성정책은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리고 여성 능력 개발을 통한 여성 발전에 중점을 뒀다면‚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은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기회를 보장해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 데 있다. 여성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던 움직임을 넘어 ‘양성평등’을 통해 남녀 모두가 동반 성장을 꿈꾸는 시대를 맞이했다.
정부는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위해 성별 격차 해소, 일과 가정의 조화, 차이와 인권 존중을 양성평등정책 기본 계획의 3대 목표로 세우고 양성평등 문화 확산과 일·가정 양립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양성평등 문화 확산에 남성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자녀 양육과 관련한 남성의 권리와 책임을 더욱 강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양성평등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정책은 없다며 후퇴한 성평등 정책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 2월 26일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림에 따라 간통죄는 62년 만에 폐지됐다. ©일러스트 김성준
2 62년 만에 폐지된 ‘간통죄’
간통죄가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법재판소는 2월 26일 간통죄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의견을, 2명이 ‘합헌’ 의견을 내면서 폐지가 결정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성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이 변하고 처벌의 실효성도 의심되는 만큼 간통죄 자체가 위헌”이라고 밝혔다. 여성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외도하는 이가 늘어나 기혼 여성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미 간통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전국 교도소·구치소에 복역 중이던 9명은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2월 26일 당일 모두 석방 조치됐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는 간통죄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던 1770명 전원을 불기소 처분하거나 공소를 취소하는 등 간통죄 위헌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를 모두 마쳤다. 간통죄와 함께 폐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이혼 유책주의’는 계속 남게 됐고, 간통죄 폐지 이후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위자료 청구 소송은 증가했다.
▲ 그룹 ‘딕펑스’가 지난 5일 ‘히포시’에 동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 성평등 위해 남성들이 나선다 ‘히포시’ 캠페인
여성신문이 5월부터 추진한 성평등 연대 운동 ‘히포시(HeForShe)’ 캠페인이 정치계와 재계를 비롯해 학계, 의료계, 문화예술, 사회단체 등으로 꾸준히 확산됐다. 히포시 캠페인은 전 세계 많은 여성이 겪고 있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10억 명의 남성이 지지자로 나서줄 것을 호소하는 유엔여성(UN Women)의 양성평등 글로벌 캠페인이다. ‘불평등은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 속에 지난해 7월 시작됐다. 많은 남성이 ‘히포시’ 캠페인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본지가 히포시 캠페인에 나선 까닭은 전 세계적인 양성평등 캠페인에 한국의 참여율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엔여성이 9개월간 진행한 히포시 캠페인에 참여한 한국 남성은 380명에 불과했다. 유엔여성은 월간 『히포시』 7월호에 “한국 남성들이 캠페인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한 결과 참가자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히포시 캠페인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 두 아이의 아빠 유판영 씨가 둘째 아이를 돌보며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 아빠 육아휴직 확대와 ‘워킹대디’ 증가
올해는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많이 늘어났고, 육아를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근로자, 즉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자도 지난해 동기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사회활동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성을 일컫는 ‘워킹맘’처럼 일·가정 양립을 추구하는 ‘워킹대디’라는 표현도 널리 쓰이고 있다. 올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은 5.1%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5%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빠 육아휴직은 일·가정 양립 지원책과 연결되어 있지만, 여전히 ‘용감한 아빠’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많다. 육아에 참여하려는 남성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높기만 하다.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직장 분위기상 사용이 어려워서’를 꼽았다. 여전히 상사 눈치 보느라, 승진에 불리할까 싶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 KTX 여승무원들이 7년여 동안 벌였던 법정 공방에서 결국 패소했다. ©이세아 기자
5 7년의 싸움, 결국 패소한 KTX 승무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된 KTX 여승무원 34명이 7년여 동안 벌여온 법정 공방에서 결국 패소했다. 4번째 소송이었지만 끝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서울고법 민사1부는 11월 27일 KTX 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직원이라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철도유통이 사업주로서 독립성이 없거나 형식적·명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과 종속적인 관계로 코레일이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이자 근로 제공의 상대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승무원들에게 지금까지 공사로부터 받은 임금을 돌려주라고 판시했다. 승무원들은 1인당 8640만원의 임금을 토해내야 한다.
▲ 250개 여성?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은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의 무죄 판결을 규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 올해의 나쁜 판결 ‘여중생 성폭력 무죄’
10월 16일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성을 중학생 때부터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9년형을 받은 40대 남성이 결국 무죄를 선고받아 올해의 ‘나쁜 판결’로 남았다. 1심은 징역 12년을, 2심은 징역 9년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선뜻 믿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연예기획사 대표 무죄 판결은 전국 325개 여성·청소년·인권단체가 제대로 된 처벌을 촉구하는 10만 명 서명운동을 진행할 만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번 판결은 법조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나이 상향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에서 동의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미성년자 의제강간 및 추행죄의 대상 나이를 기존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했다. 40대 남성과 여학생과의 연인관계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처벌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다.
▲ 미혼부 출생신고 문제를 다룬 SBS ‘궁금한 이야기 Y’ 한 장면. ©SBS
7 미혼부 출생신고 가능케 한 ‘사랑이법’
일명 ‘사랑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미혼부 자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11월 19일부터 시행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 아이 아버지가 유전자 검사서 등 지정 기관의 확인서를 첨부하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해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4월 25일 방영된 SBS ‘궁금한 이야기Y’를 통해 사랑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가 까다로운 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는 ‘사랑이’를 낳은 직후 떠나버렸다. 미혼부인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출생신고를 하려 했지만, 아이 엄마의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정보를 모르면 불가능했다. 사랑이는 태어난 지 1년이 넘도록 주민등록이 안 돼 의료보험 혜택 등 기본 보장을 받을 수 없었다.
▲ 여자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여자 축구 대표팀. ©뉴시스ㆍ여성신문
8 “꿈★을 이루다” 여자축구 첫 16강 진출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페인에 역전승을 거두고 월드컵 본선 첫 승리와 함께 16강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 국민에게 기쁨을 안겼다. 한국의 승리는 2003년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후 12년 만이자, 본선 6경기 만이다. 16강은 월드컵 본선 무대 두 번째 만에 이뤄낸 쾌거다. 여자축구는 남자축구가 48년이 걸린 월드컵 1승과 16강 진출을 12년 만에 해냈다.
한국과 스페인 두 팀은 전후반 90분 동안 그야말로 혈투를 벌였다. 첫 골은 스페인에서 나왔다. 전반을 1-0으로 마친 한국은 지소연을 중심으로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후반 8분 드디어 한국의 첫 골이 터졌다. 조소현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헤딩슛이 스페인 골망을 흔들었다. 역전 골은 교체 투입된 김수연의 오른발에서 나왔다. 선수들은 역전 이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종 점수 2-1로 월드컵 첫 승리를 일궈냈다.
▲ 올해는 임신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둬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전년 대비 14.9%나 늘어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9 경력단절 여성 206만 명 시대
결혼과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줄고, 상대적으로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늘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둬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전년 대비 14.9%(6만5000명)나 늘어났다. 지난 4월 기준 15~54세 기혼 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 비중이 21.8%로 전년 대비 0.6%포인트 하락했음에도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오히려 증가했다. 경력단절 기혼 여성은 205만3000명이며, 이 중 30대 여성이 109만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30대 기혼 여성 10명 중 넷이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일자리를 포기한 경력단절 여성이다. 저출산 극복과 여성인재 활용을 위해 일부 사업장에서 임산부 단축 근무제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제 제도를 쓰기에는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경력단절 사유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합한 비율은 30대 64.4%, 20대 60.7%, 40대 18.1%다. 사회적 활동이 가장 활발해야 할 30대에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고 있다.
▲ 여성노조 연세대기숙사분회 등이 지난 4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근로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10 여성 비정규직 비율, 남성의 세 배
전체 가구 중 맞벌이 가구가 절반을 넘고, 일하는 여성과 일하는 엄마가 대세지만, 일하는 여성 중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다. 올해는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4년 만에 상승하기도 했다. 11월 4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627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19만4000명 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 임금 차이는 122만9000원이다.
일하는 여성의 숫자는 늘었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회사에서 고위직까지 진출하는 여성은 여전히 적다. 고학력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고학력 남성 비정규직 비율의 세 배로, 고졸 이하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과 비슷하다.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고졸 이하 24.3%, 전문대졸 15.6%, 대졸 15.6%, 대학원졸 21.5%다. 남성의 경우 고졸 이하 22.3%, 전문대졸 11.3%, 대졸 6.3%, 대학원졸 7.3%다. 고학력 여성일수록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고, 남녀차별을 심하게 받고 있다.
201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