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시 뉴스

여성신문과 유엔여성이 함께하는 히포시 캠페인

셀러브리티 페미니즘… 할리우드가 달라졌다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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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왓슨의 유엔 ‘히포시’ 연설,

비욘세, 레이디 가가 페미니즘 공연

스타들 사이서 유행처럼 번진 페미니즘

 

페미니즘 대중화 vs 가짜 여성운동

“말뿐인 페미니즘은 악영향” 비판

 

▲ 엠마 왓슨   ©UN Women/Celeste Sloman

▲ 메릴 스트립   ©HFPA

 

“제 이름은 애슐리 주드이고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1월21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여성 행진(Women's March)’에 참여한 배우 애슐리 주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비하 발언을 비꼬는 강력한 연설로 이날의 스타가 됐다.

 

“나는 수잔, 엘리자베스, 엘리노어, 아멜리아, 로즈, 글로리아, 콘돌레자, 소냐, 말랄라, 미셸, 그리고 힐러리처럼 추잡한 여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기는 움켜잡으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날 행진에 참여한 이는 주드만이 아니다. 동료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 줄리안 무어, 나탈리 포트만, 제인 폰다를 비롯 가수인 마돈나와 케이티 페리, 앨리샤 키스, 마일리 사이러스 등 많은 스타들도 함께 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고 양성평등과 여성인권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른바 ‘셀러브리티(celebrity, 유명인) 페미니즘’을 이끄는 대표 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셀리브리티 페미니즘, 인터넷 통해 확산

 

이처럼 유명 연예인들의 페미니즘 관련 발언과 행동이 최근 연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엔 여성 친선대사로 ‘히포시(HeForShe)’ 캠페인에서 인상적인 연설을 보여줬던 엠마 왓슨은 작년 초 1년간 배우활동을 중단하고 여성운동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녀임금격차를 지적했던 패트리샤 아퀘트의 수상소감은 할리우드의 ‘공정임금법(Fair Pay Act)’ 제정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유명인, 특히 유명 연예인들의 페미니스트 선언과 양성평등 관련 발언 및 활동 등을 의미하는 셀러브리티 페미니즘은 최근 여성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이슈 중 하나다. 폭넓은 영향력을 가진 연예인들의 이 같은 행동은 분명 대중이 페미니즘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페미니즘을 철학이나 정치적 운동으로 여겼던 많은 여성들이 바로 자신들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을 외치는 유명인들의 발언이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2~3년간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이 크다. 유튜브 사이트에서 ‘페미니즘’을 검색하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의 저자)의 테드(TED) 강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와의 공동작업을 계획했다는 비욘세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 비욘세의 ‘페미니스트’ 공연과 앨범이 다시 인터넷과 동영상 사이트, SNS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며 아다치에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까지 페미니즘에 접하게 되는 식이다.

 

이들이 페미니스트로서 알려지는 계기는 언론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패트리샤 아퀘트 이후 제니퍼 로렌스나 아만다 사이프리드, 힐러리 스웽크 등의 배우들이 칼럼이나 인터뷰를 통해 동료 남성보다 턱없이 작은 출연료를 폭로하고 업계 관행을 비판했다. TV 시리즈 ‘걸스’의 연출자이자 배우인 레나 던햄은 ‘레니 레터’라는 이름의 페미니즘 뉴스레터를 직접 발행하며 준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 2014년 비디오 뮤직 어워즈 중 비욘세의 공연 장면.   ©VMA

 

 

언론 인터뷰부터 노메이크업 운동까지

 

발언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을 위한 행동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지나 데이비스는 '언론에 등장한 성(性)을 연구하는 지나 데이비스 재단'을 설립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녀 배우의 출연과 대사의 분량, 대화의 질을 분석한 GD-IQ(지나 데이비스 포용 지수)를 공개했다. 메릴 스트립은 여성 시나리오 작가 지원 펀드를 설립해 여성 영화인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엠마 왓슨처럼 유엔 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통해 페미니스트로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유엔여성 초기 친선대사였던 니콜 키드먼과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인 안젤리나 졸리와 케이트 블란쳇 그리고 유엔인구기금(UNFPA) 친선대사 애슐리 주드 등 각자 활동하는 기구의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 활동에서 여성문제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2014년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비욘세가 ‘페미니스트’(FEMINIST)라는 글씨와 함께 등장하던 순간은 셀러브리티 페미니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레이디 가가는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52명의 성폭행 피해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가수들은 노래 가사와 무대를 통해 양성평등과 안티성폭행 등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외모의 기준에 항의하는 의미로 화려한 의상과 화장을 없애고 민낯으로 무대에 당당히 오르는 앨리샤 키스의 ‘노메이크업 운동’처럼 독특한 경우도 있다.

 

 

▲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중 레이디 가가의 공연 장면.   ©oscar.com

 

▲ 애쉬튼 커쳐

 

“나도 페미니스트” 남성들의 말·말·말

 

셀러브리티 페미니스트는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배우 조셉 고든 래빗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교육이 일찍부터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였다고 고백했다. 어머니가 심어준 이미지가 어느새 몸에 배어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 됐다며 어린 시절의 양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콜린 퍼렐은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부인하면서도 “전 세계 대통령이나 총리 등 리더의 75%가 여성이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면서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과 페미니스트 지지를 표현했다.

 

애쉬튼 커쳐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수위 높은 주제까지 도전했다. 그는 “성교육에서 어떻게 하면 임신을 하고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만 여성의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의 성생활은 말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문화로 자신의 성에 대해 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존 레전드는 “모든 남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여성이 더 많은 권한을 가질수록 우리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셀러브리티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들이 말하는 페미니즘과 진짜 여성운동과의 괴리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에요. 왜냐하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으니까요”라는 발언은 페미니즘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지만 수박 겉핥기식의 여성운동에서 그치는 것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느 게이는 히포시 캠페인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엠마 왓슨의 발언은 지난 40여 년 동안 이미 말했던 것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스트 선언을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부 연예인들 때문에 ‘셀러브리티 브랜디드(branded)’ 페미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미니스팅’ 설립자인 제시카 발렌티는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들을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반갑지만 그것이 여성운동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지텐더 셰뎁 교수의 연구는 셀러브리티 페미니즘이 사실상 페미니즘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통계자료로 보여준다. 전 세계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유명인들의 발언 때문에 양성평등 이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답변은 20%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80%는 페미니스트 선언에 앞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신뢰할 수 없다고 했으며 78%는 연예인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권위 있는 인물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원한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패배와 셀러브리티 페미니즘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과도한 지지 선언이 승리에 필수적인 백인 여성들의 표를 얻는데 악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실제로 백인 여성의 53%가 도널드 트럼프에 투표했다) 그의 지지기반이었던 유색인종 여성이나 성소수자 여성, 청년층 일부까지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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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수 기자 (birdy@womennews.co.kr)